기다림의 미학
By 푸딩
고상한 검사 나리와 만난 지 사 개월, 연애는 이 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한참 풋풋함이 넘쳐야 할 연애였으되 미츠루기 레이지는 그런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내였다. 연애는커녕 평생 사랑 한 번 못해 본 것처럼 굴었고, 연애 전과 후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스킨십에 거리낌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일까. 그나마도 ‘밀어내지 않는다’에 더 가까웠을 뿐, 미츠루기 쪽에서 먼저 접근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래, 조급함이 일었다. 로우는 솔직하게 제 마음을 인정했다.
미츠루기와 만나기 위해 굳이 국제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교묘히 이용해 일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맡겠다 자처한 것이 벌써 한 달 전이었다. 경찰청에서 제공해 주겠다던 임시 거처마저 마다하고 굳이 미츠루기의 집에 얹혀살며 로우는 제 연인의 사소한 점들을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미츠루기는 실은 요리를 정말로 못한다거나, 잠버릇이 심히 좋지 않다거나─이른 새벽에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곤 했으니─, 일요일 오전 열 시에 약속한 것처럼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뭐 그런 것들을. 거의 해가 뜰 때 즈음이 되어서야 잠들었던 것 같은데, 일요일 열 시 즈음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을 뜨는 미츠루기는 썩 기이할 지경이었다.
고작해야 애들 보는 만화가 아냐.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고 좀 더 잠을 자는 게 어떨까. 한 번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졸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채로 비척비척 거실로 나온 주제에, 미츠루기는 그 날도 어김없이 꿋꿋하게 리모컨을 들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수면 부족의 책임을 묻자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로우는 뻔뻔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츠루기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대신 여전히 졸음기가 가득한 눈을 매섭게 치켜떴다.
“애들 보는 만화 따위가 아니다.”
“……그래?”
“이런 쪽으론 무지하군, 자네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굳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간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았다. 미츠루기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제 무릎을 세워 끌어당겨 두 팔로 안았다. 보드라운 분홍색 잠옷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 없이 구겨졌다. 로우는 한숨을 내쉬고 모닝커피 한 잔을 내려 가져다주었다. 부드러운 라떼로, 시럽은 달달하게 두 번. 그런 취향이었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선 이젠 슬슬 귀에 익은 만화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미츠루기는 나지막하게 그것을 따라 흥얼거리며 또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정말로 잠들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바라보면 또 잔뜩 눈을 찌푸리고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쏟아지는 잠을 어떻게든 뿌리치고라도 보겠다는 것일까. 그렇게나 좋나, 저게. 로우는 멀뚱히 텔레비전을 향해 눈을 돌렸다. 지극히 일본스러운 스타일의 히어로가 악당을 무찌르는, 지극히 뻔한 내용이었다. 애들은 확실히 좋아하겠네. 무심하게 미츠루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오늘 점심은 간만에 좀 멀리 가서 먹을까.”
“왜, 평소처럼 가까운 가정식 전문점에 가지.”
“간만에 둘 다 온전히 쉬는 주말이잖아. 여유롭게 보내자고.”
어찌어찌 미묘한 방식으로 동거 생활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지만, 실은 생각보다 여유롭게 지낼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미츠루기는 여전히 과할 정도의 업무에 시달리는 상급 검사였고, 로우 역시 어디까지나 사건 수사를 위해 파견된 국제수사관이지 휴가를 나온 것은 아니었다. 공판 준비를 하느라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것이 미츠루기의 일상이었다면, 반대로 로우에겐 주말이나 새벽에도 갑작스레 전화를 받고 뛰쳐나가는 삶이 익숙했다. 범인을 쫓느라 며칠 간 좁은 차 안에서 쪽잠을 자며 지내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니 이번 주말 만큼은. 로우는 썩 결연한 표정으로 미츠루기를 바라보았다.
“가고 싶은 데라도 있어? 조금 멀리까지 나가도 괜찮아. 드라이브라도 가자고.”
“……오토바이라면 사양이다.”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로우 시류.”
“그런 걸 물은 게 아냐.”
“그러면?”
미츠루기는 양손으로 머그컵을 들고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은 컵에선 흰 연기가 아른아른 올라왔다. 담요를 뒤집어쓴 얼굴이 발그스름했다. 부스스하게 쏟아진 머리칼이 옆얼굴을 가렸다. 후우. 뜨거운 라떼를 작게 불어 식히니 커피 표면에 작게 물결이 일었다.
“그냥, ……평범하게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갈까 생각했을 뿐이야. 바다라도 보러 갈까.”
“자네의 본국엔 바다가 없었던가.”
“그렇진 않아. 일본처럼 사 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있다고.”
“그런가.”
텔레비전 불빛이 깜빡거렸다. 오늘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대충 그런 대사가 흘러나왔다. 아, 끝났군. 미츠루기가 미련 없이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바다라……, 차로 한 시간 정도였나.”
“내게 물어도 잘 몰라.”
미츠루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숙였다. 다소 어정쩡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다 한 손으로 제 허리를 짚고 로우를 밉지 않게 쏘아 보았다. 그러니까, 내 탓이란 말이지. 달리 할 말이 없어 로우는 어깨만 으쓱하고 미츠루기를 가볍게 부축했다. 주방까지 향하는 내내 미츠루기는 불평을 웅얼거렸다.
“다음엔 좀 더 자제하는 게 어떤가, 로우 수사관.”
“그런 호칭은 너무 딱딱하잖아.”
“자네도 검사 나리라고 부르고 있지 않나.”
“알았어, 레이지.”
“……으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지만, 언뜻 보인 뺨이 새빨갰다. 아직 이름으로 부르기엔 조금 이른가, 하지만 연애를 시작한 지 이 개월이나 되었는걸. 그러고 보면 미츠루기는 지금껏 저를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로우 수사관, 아니면 로우 정도였다. 어쩐지 조금 오기가 생겼다. 이것도 또 다른 조급함일까 싶다가도, 슬그머니 미츠루기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부끄러워서 그래?”
“더 이상 곤란한 말은…… 하지 말게.”
“섭섭하네.”
가벼운 말이 흩어졌다.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최단 거리에 위치한 해변을 골랐다. 바다까지는 정말로 차로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몇 번 와 본적 있나봐, 검사나리. 농담처럼 툭 던진 말에 미츠루기는 어쩐지 곤란한 표정을 하곤 시선을 피했다. 와봤으면 그렇다고 하면 될 텐데. 분명 무언가 말에 걸림이 있음을 알았지만 이유를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미츠루기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기분을 지워낼 수 없었다.
“좋네, 겨울 바다도.”
“이제 곧 봄일세.”
“아직 춥잖아. 봐, 입김도 나온다고.”
“……날짜 상으론 그렇단 뜻이었다.”
썩 퉁명스런 말을 하면서도 미츠루기의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집이나 회사에서 벗어나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은─실은 그렇게까지 먼 곳도 아니었으나─정말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던 탓이었을까. 백사장을 따라 걸을 때마다 사박사박한 발소리가 스쳤다. 입자가 작은 모래알들이 구두를 따라 흐트러졌다. 마음에 들어, 검사 나리? 로우는 한참 동안 그런 미츠루기를 바라보다 넌지시 물었다.
“글쎄.”
“웃고 있으면서.”
“그건…….”
미츠루기는 잠시 바다를 내다보았다. 느릿하게 숨을 내쉬고 찬찬히 눈을 감았다 떴다. 회색 눈동자에 차게 식은 파도가 담겼다 쓸려나가길 반복했다. 한참 후에야 미츠루기는 시선을 돌렸다. 눈에 멀뚱한 표정의 사내가 비치고, 말간 미소가 번졌다.
“그래, 마음에 든다고 하면 맞겠지.”
“뭐야, 그 애매한 대답.”
“음.”
“낭자(狼子) 왈, 대답은 확실하게 해라.”
“나는 낭자와는 초면이라서 말이다. 모르겠군.”
미츠루기가 농담처럼 중얼거리곤 작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섞여 흐드러졌다. 정말로, 무언가 말하지 않고 있지. 의문이 울컥 치밀었으나 로우는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내쉬고 또 아무렇지 않게 마주 웃으며 제 연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츠루기는 여전히 풀어진 얼굴로, 그리고 풀어진 만큼이나 많은 말들을 삼켜낸 표정으로 로우를 바라보았다.
“얇은 코트 한 장으로 괜찮겠어, 검사 나리? 감기 걸리겠네.”
“이 정도는 괜찮……, 웃!”
대답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작스레 로우가 그의 등을 끌어안은 탓이다. 로우는 다른 이들보다 체온이 조금 높은 편이었다. 와락 끌어안은 몸은 적당히 따스했다. 똑같은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데, 어째서 이 남자는 여전히 온기를 잃지 않는 걸까. 로우는 손을 앞으로 해 미츠루기의 손을 붙잡고 쓸었다.
“손이 너무 차.”
“본래부터 이랬다. 별로 문제될 것도 아냐.”
로우의 손은 그의 품만큼이나 뜨거웠다. 잦은 사건들을 해결하며 얻은 자잘한 흉터와 상처들로 얼룩진 것이 선연히 느껴졌다. 마디가 굵고 거친 손이다. 미츠루기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본래부터? 큰일이네. 여름에도 동상 걸리겠어.”
“바보 같은 소리.”
“농담이야.”
쾌활한 웃음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것은 꼭 늑대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개가 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미츠루기가 밉지 않게 로우를 흘겨보았다.
“이제 어쩔까. 전망대라도 올라갔다 올까?”
“……음.”
“왜?”
“아무것도 아니다.”
미츠루기의 목소리가 또 묘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로우는 쉬이 눈치 챘다. 수사관으로서의 직감을 연인과의 데이트에서 발휘하고 싶진 않았는데. 부러 모른 척 흘려내고 미츠루기를 더 꽉 껴안았다.
“혹시 높은 곳이 무서운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러면 문제없네.”
그 때 즈음에 여전히 떨리고 있는 미츠루기의 입 꼬리를 무시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로우는 조금 뒤늦은 타이밍에 깨달았다.
*
“검사 나리, 솔직히 말해.”
“무엇을 말인가.”
평탄하게 되묻는 제 연인의 낯을 로우는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미츠루기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별 것이 아니었나 보군. 그러면 마저 갈까. 그러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로우는 다급히 그 손목을 붙잡았다.
“별 것이 아니라니.”
“그러면?”
“우리 지금 어디까지 가야 하는 줄 알고 있는 거지?”
“이십오 층. 이제 십 층만 더 올라가면 되는군.”
“그러니까.”
로우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길 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미츠루기는 알맞은 대답을 하지 않고, 대신 ‘국제 수사관이라는 명칭도 다 헛말인가 보군. 요새 체력이 떨어졌나?’ 따위의 말을 했다. 분명히 고의적으로 답을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로우는 또 한숨을 쉬었다. 굳이 캐물으면 필시 저 고상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득하게 남은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기에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이건 명백히 부자연스러웠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비상계단으로 올라간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일 층에 분명 엘리베이터가 있던 것 같은데.”
미츠루기가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멈칫했다.
“……엘리베이터는 취향이 아니다.”
“그게 취향을 따질 문제야?”
“그래.”
“억지 부리지 말고.”
손목을 붙든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미츠루기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진 것 같아 로우는 저 또한 얼굴을 작게 찡그렸다. 계단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손목을 잡힌 채로 미츠루기는 차마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더듬거렸다. 그게, 계단으로, ……상관없잖나. 어떻든. 이어지지 못한 단어들이 빙빙 돌았다.
“전혀 상관없지 않아.”
“그럼 자네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게. 난 알아서 갈 테니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냐.”
“…….”
“아까부터 계속 뭘 숨기고만 있잖아. 검사 나리.”
로우는 잡은 손목을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불안하게 서 있던 몸이 한순간에 당겨져 쏟아졌다. 놀라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몸을 손쉽게 받아 안았다. 몸이 젖혀진 채로 완전히 의지하는 꼴이 되어, 미츠루기는 한참 후에야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겁에 질린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흔들리는 음성에서 당혹스러움이 짙게 묻어났다. 로우는 여전히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연인 사이에 너무 비밀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 꼭 용의자를 취조하고 있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나라고 해도 상관없어. 근데, 그렇더라도.”
“로우 수사관……!”
“……불쾌하다고, 거짓말은.”
겨우 눈을 돌려 마주한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음을 미츠루기는 그제야 깨달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하려 우물거리다가, 또 금세 머뭇거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말하고 싶지 않다.”
“미츠루기 레이지.”
딱딱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미츠루기 레이지라니, 그런 호칭으로 부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어쩐지 자꾸만 추궁 받는 기분이 밀려왔다.
“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거야.”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아.”
“기다리면 언젠가는 말해줄 거야?”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
몸이 힘겹게 받쳐져 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는지 미츠루기의 목소리가 자꾸만 흔들렸다. 꼭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얇은 음성. 그런 목소리를 해선 뭐가 별 게 아니라는 거야. 로우의 얼굴이 조금 더 일그러졌다. 괴로워하는 연인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성미가 결코 아니었으므로, 더 이상 못 본 척 넘어갈 수는 없었다. 로우 시류는 그런 사내였다.
“말하기 전엔 안 놔줘.”
“…….”
미츠루기는 굳이 힘주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저가 힘으로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안 것이 첫 번째 이유고, 섣불리 그를 뿌리쳤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던 것이 두 번째였다. 대신 미츠루기는 그의 말에도 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아예 푹 숙인 얼굴이 앞으로 와락 쏟아진 머리칼에 가려졌다. 주말을 이런 식으로 보낼 생각은 아니었다. 미츠루기를 붙잡은 채로 로우는 조용히 욕설을 입 안으로 삼켜냈다. 그래, 제가 초조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실은 이런 식으로 그를 채근함은 옳지 않을지도 모름을 알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는가. 이기심으로 포장된 유치한 질투가 일었다.
“놔 주게.”
“싫어.”
“……시류.”
갈라진 목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로우는 그것을 가만히 듣다가, 곧 말에 물기가 서리었음을 알아챘다. 그림자 진 얼굴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당황하여 다급히 몸을 끌어안고 일으켜 세웠다. 미츠루기는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 꽉 쥔 손마디가 새하얬다. 어깨를 떨며 울다 아예 계단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일련의 행동이 이어지는 동안, 로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이었다. 미츠루기의 눈물도, 약한 모습도. 전부 다.
미츠루기 레이지는 분명히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흉악한 범죄자 앞에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 앞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당당히 고개를 들고 맞섰다. 그러니, 당연히 굳셀 것이라고, 무언가 숨기고 있다면 필시 그것은 그의 자존심 문제일 거라 믿었다. 그 누구의 앞에서도 눈을 피하지 않던 사내는 차마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울었다. 손가락 새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검사 나리. 울 것 까진 없잖아. 울지 마.”
“……미안하네.”
“사과를 듣고 싶었던 게 아냐.”
“하지만 정말로, …… 말하고 싶지 않아.”
미츠루기는 그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흐느끼는 소리가 무너지듯 쏟아졌으나 그뿐이었다. 로우가 애꿎은 제 입술을 짓씹었다. 범죄자를 제압하고 추궁하는 데엔 자신이 있었지만, 우는 연인을 달래는 데엔 전혀 자신이 없었다.
“안 물어볼 테니까. 정말이야.”
“…….”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뭣하면 내가 업고 올라도 좋아.”
내키는 대로 내뱉었다. 미츠루기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엉망이 된 얼굴로 일어나, 앞서 계단을 올랐다. 굳이 말을 걸면 역효과만 날 듯싶어 로우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몇 층을 더 올랐을까, 미츠루기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언젠간 말해주겠네.”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약속이야.”
미츠루기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스러지듯 중얼거렸다. 언젠간 말해주겠네.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도, 나에 대해서도, 자네의 이름도. 뭉개져 묻히는 마지막 말을 로우는 겨우 들었다.
─ 그러니 기다리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무어라 탓할 수도 없잖아. 로우는 다시금 계단을 보았다. 한 칸씩 그것을 올랐다. 또 제 연인의 뒷모습을 보고, 직감적으로 저는 아직 미츠루기 레이지를 단 한 칸 올라왔을 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쯤 그 끝까지 올라 손을 뻗을 수 있어. 아득한 감각에 막막하다가도, 또 그 끝에 서 있을 이의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슴이 벅찼다. 여전히 말없이 계단을 오르는 연인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조금 더 오르면, 무엇이든 들을 수 있겠지. 막연한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