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직전
By 김부각
미츠루기 레이지는 진실을 한 발자국 남겨둔 상태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하나뿐인 진실로 향하는 길목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가 있었던 것 때문에, 오직 제 이기심 하나로.
그 사건의 담당 검사는 재판 나흘 전에 다른 검사에게 넘겨졌다. 넘겨지기 전의 담당 검사는 미츠루기 레이지였다. 그는 미야나기 치나미가 반년 전,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 저지른 악행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 그녀가 관여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도, 사건 파일을 받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진실에서 눈을 돌렸다. 그 손으로 진실을 밝혀내기를 거부하고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이에게 진실의 의무를 떠넘겼다. 결과적으로는 미츠루기 없이도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지만, 다분히 이기적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겠지.
미츠루기가 그 사건을 맡지 않을 이유는 분명했다. 나루호도 류이치. 지난 몇 년간 미츠루기가 피했던 그 이름. 미츠루기는 그 남자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미츠루기는 그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편지 글에서도 짙게 묻어나오는 그 집요한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변호사가 되어 만나러 가겠다고 했던가, 적어도 그때까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미츠루기가 그 사건을 맡을 이유 또한 분명했다. 이 사건에 밀접히 관련된 한 인물, 한 명의 살인자가 사건 파일의 평면 안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미야나기 치나미. 1년 전의 법정에서 미츠루기와 아야사토는 진실에 다다르지 못했다. 한 사람의 악행이 모든 것을 어지럽히고, 끝내는 두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미츠루기는 그 사건에 마침표를 찍을 의무가 있었다.
미츠루기는 오랜 시간 고민을 했다. 검사의 의무는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미츠루기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자의 이름이 있는 이상, 이 사건의 살인자는 피고인이 아닐 확률이 있었다. 게다가 피고인은 그였다. 그 나루호도 류이치. 미츠루기는 직감을 믿지 않는 편이지만 나루호도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제 내면의 무언가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살인자 나루호도 류이치' 는, '피고인은 유죄'라는 하나의 정답을 좇아 온 미츠루기에게조차 강렬한 이질감을 선사했다.
미츠루기는 두려웠다. 피고인이 진범이 아닌 것을 알고 법정에 서는 것은, 그 하나뿐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 스승이 그토록 강조했던 완벽한 무패의 행진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스물한 살 무렵의 미츠루기 레이지에게 턱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츠루기는 한 겹의 마지막 양심인지 뭔지 모를 무언가를 놓지 못했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그에게 유죄를 선고해, 어두운 소문에 한 줄을 더하고 제 경력의 완벽을 이어나가는 것에 어딘가 껄끄러운 점이 있었다.
담당 변호사는 아야사토였다. 그녀는 1년 전의 법정과 카미노기의 독살로 미츠루기보다 몇 배는 큰, 다시 법정으로 돌아오지 않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피고인을 믿겠다며, 미야나기 치나미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그 여자는 분명 유능하니 어떻게든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줌의 알량한 믿음으로, 미츠루기는 그 사건에서 눈을 돌렸다. 제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행동이었다.
몇 년 후 미츠루기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아야사토가, 살해되었다고? 그녀 자신의 동생에게? 그녀에게는 지켜야 할,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살아남아서 해야 할 일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미츠루기는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누구라 할지라도 그녀를 죽인 자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무기로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먼저 들었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비로소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는 눈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피해 도망쳤던 과거를 지워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대신해 진실을 찾아낸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미츠루기는 그렇게 믿었었다.
재판이 끝난 순간, 미츠루기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또 하나의 빚을 졌다는 것을.
아야사토의 장례식에서 미츠루기는 줄곧 그 남자를 생각했다. 만에 하나 그가 깨어난다면 변명할 말을 고르는 중이었다. 아니, 애초에 변명할 수나 있을까. 그 뒤로도 미츠루기는 잊을 만할 때마다 그의 병실에 찾아갔다. 아야사토가 그래 왔던 것처럼, 협탁 위의 꽃이 시들면 새 꽃으로 바꿨다. 미츠루기가 카미노기 소류를 다시 만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왜 법정에 서지 않았나?"
그 검사의 집무실은 어두웠다. 업무를 보는 공간이니 실제로 어두운 것은 아니다. 늦은 밤인 지금은 물론 형광등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몇 번을 들어가 봐도 어둡다는 인상만큼은 도저히 지워낼 수 없었다. 한쪽 벽면이 통으로 창문이라서 해만 떠 있다면 조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밝은 공간이건만, 항상 두터운 암막 커튼이 답답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드리워져 있었다.
"어제의 법정, 원래 담당 검사는 자네였다. 어디에 갔었지?"
어두운 나무 색, 무채색과 약간의 푸른 빛깔. 그리 달갑지 않은 그 공간에서, 미츠루기가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익숙함을 갖게 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안 그래도 바깥이 보이지 않아 밀실 같은 데다, 불을 끄면 대낮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끔찍한 공간이었지만 미츠루기는 그곳에 자주 방문했다. 검은색 소파에 앉아 공기를 두텁게 채운 커피와 담배의 잔향을 들이마시곤 했다.
미츠루기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검사가 마시는 것처럼 쓸데없이 진하고 쓴, 밤잠을 설치는 데만 기여를 하는 음료는 질색이다. 검사가 되기 위해 잠을 줄여 가며 공부할 때도 커피는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지금의 미츠루기에게 커피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도발적인 웃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세 줄의 붉은 빛. 그뿐이었다. 반면에, 그 검사는 차를 마시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이다. 인사치레처럼 말했던, 차라도 한 잔 대접하겠다는 말조차 단호하게 거절당했을 정도로. 그와 미츠루기는 사소한 점에서도 매번 취향이 엇갈렸다. 미츠루기의 손에서 연하게 탄 카페라테가 식어 가고 있었다.
그 검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예의 그 웃음을 띄운 채로.
"병원이다. 도련님도 잘 알고 있겠지, 내 몸 사정은."
곡옥은 변호사 뱃지와 함께 나루호도에게 돌려 주었지만 미츠루기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군."
"내가 없어서 외롭기라도 했나? 유감이군."
그가 던지는 말들에 진심은 없다는 것을, 미츠루기는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자신도 그와 같은 태도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더더욱, 미츠루기는 대답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카미노기 소류."
"불러 달랄 땐 절대 안 불러 주더니, 도련님에게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나?"
미츠루기 레이지, 그는 늘 자신의 논리를 바탕으로 진실을 찾아내 왔다. 수사에서도, 법정에서도. 미츠루기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사건 파일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범인은 하자쿠라인 아야메인가? 미츠루기는 더 이상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미츠루기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능성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부자연스럽게 치워진 눈, 석등의 글자, 나루호도에게 들은 또 다른 흉기의 정보.
그리고.... 미야나기 치나미.
모든 증거와 단서의 조합으로 미츠루기는 희미한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누구인지도.
"오늘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
"자네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믿고 있다. 그 남자는 진실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어."
"....진실..이라."
그날 늦게, 미츠루기는 현장에서 증거물 하나를 발견했다. 누구에게도 그 증거를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분명한 증거 은폐였지만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진짜 '흉기는 이미 발견되었고, 이 또 하나의 증거물은 미츠루기와 그 검사의 거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멀리 갈라 놓을 것이다. 계획은 간단했다. 발밑에서 세차게 흐르는 오동천에 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달빛에 핏빛으로 빛나는 단도가 제 손을 떠나려는 순간, 미츠루기는 몇 년 전의 사건에서 자기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때로는 비극을 이끌어낸다. 허나, 그 이상의 비극이 존재하지. 그건 바로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다."
미츠루기는 그 검사를 위해 자신의 원칙을 몇 번이고 짓밟았다. 하지만 이번 것은 달랐다. 그의 검사로서의 신념, 법조인으로서의, 진실을 밝혀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의무. 그것마저 저버릴 것인가?
미츠루기 자신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기로에서 고뇌했다.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죄를 감추기 위해, 끝의 끝까지 망설였다.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와서야, 미츠루기는 힘겨운 결정을 내렸다.
미츠루기가 단도를 감식반에 넘긴 것은 재판 당일 아침이 되어서였다.
재판이 끝났다. 그 남자는 미츠루기의 예상대로 진실을 이끌어냈고,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하지만 미츠루기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검사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무엇도 명확하지 않은, 무엇도 보이지 않는.
선택이 달랐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미츠루기가 그 진실을 감췄다면, 그는 만족했을까.
미츠루기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창살 너머로 멀어지는 그를 보았다.
마감 후기
: 아 진짜 스불재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와닿은 건 처음이었던것 같아요 내가 왜 합작을 열려고 했을까 왜 이렇게 어려운 커플링을 잡았을까 어쩌다가 탐라의 마이너 빌런이 되었을까 애초에 왜 이런 망한 장르에 발을 담갔을까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고 다른 29분의 작품들 보는 것도 너무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