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죽이기
By 딩동링
보석,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이 있어 장식품이 되는 광물. 오오토로는 보석을 숭배했다. 변하지 않는 단단함과 녹슬지 않는 빛은 가히 찬사를 보낼만 했다. 오오토로는 그 신이 빚어낸 조각들을 수집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보석들을 모아도 오오토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아니,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오오토로는 하나하나 줄지어 놓여있는 보석들을 바라보았다. 사파이어, 에메랄드, 가넷, 토파즈, 그리고 기억할 수 조차 없는 여러 광물들. 그들은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너무나도 흔했다. 마치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붉은 장미들처럼.
오오토로는 암시장으로 향했다. 암시장은 희귀한 보석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경매에 나올지도 몰랐다. 경매장은 시장 바닥만큼이나 시끄러웠다. 두통이 밀려와 저절로 인상을 썼다. 경매품으로는 이름 모를 화가의 유작, 백 년을 살았다는 바다거북의 박제, 프랑스의 어느 장인이 만들었다는 작은 마리오네뜨 인형같은 고리타분한 것들이 등장했다. 오오토로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오토로가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그 때 마지막 경매품이 베일로 가려진 채 올라왔다. 늘 마지막이 화려한 법이었다. 오오토로는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커다란 직육면체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경매품은 보석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살짝 드러난 하단 부분이 물이 찬 유리처럼 투명했다. 아마 어항인걸까. 안에 들어있는 것은 희귀한 심해어일지도 모른다. 경매를 진행하던 키가 크고 수염을 기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정말 저도 깜짝 놀란 경매품입니다. 부르는게 값일정도로 귀한 물건이니 모두 집중해주셔야겠습니다."
사족이 너무도 길었다. 오오토로는 무대에 난입해 그 네모난 것을 감싸고 있는 그 흰 천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한참을 더 떠든 끝에 남자가 드디어 베일을 벗겼다. 그러자 그 시끄럽던 경매장이 한순간에 소리를 잃었다. 오오토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경매품은 역시나 어항이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고작 심해어 따위가 아니였다. 수조 안에 든 것은 바로 인어였다. 인어의 꼬리는 다이아몬드로 실을 뽑아 칭칭 두른것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창백한 피부를 하고 수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저 인어야말로 오오토로가 찾던 희귀한 보석이었다.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오토로는 얼마를 지불하던지간에 저 인어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접전 끝에 결국 인어의 소유주는 오오토로가 되었다.
오오토로는 보석 컬렉션들을 구석으로 치우고 그 자리에 수조를 놓았다. 은은한 빛이 수조에서 퍼져나가 오오토로에게까지 닿았다. 잠시 인어를 감상하던 오오토로는 수조에 적힌 짧은 단어를 천천히 읽었다.
'미츠루기 레이지'.
인어의 이름은 아마 미츠루기 레이지인듯 했다. 오오토로는 부드럽게 인어의 이름을 불렀다.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오오토로의 말을 인지하는 것인지 인어가 오오토로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오토로는 인어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가 반짝거리는 가루를 뿌려놓은듯 빛났다. 볼에는 사파이어인지 아쿠아마린인지 모를 푸른 보석이 쿡쿡 박혀있었다. 인어가 오오토로의 손짓에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일때마다 하늘하늘한 은빛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오오토로는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헤까닥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너무 행복해서 심장을 푹푹 찔러야 조금이라도 진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너무 예쁘게 빛나잖아'.
오오토로는 붉어진 얼굴로 인어에게 말을 걸었다. 인어와의 소통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오오토로는 인어와 눈을 맞추려 노력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오토로 신고라고 합니다."
"....."
인어에게선 말이 없었다. 입을 벌리며 뭔가 말하는듯 했지만 오오토로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마 소통은 불가능한 듯 했다. 하지만 말을 알아듣는것 같았는데. 오오토로는 다시 질문했다.
"혹시 이름이 미츠루기 레이지에요?"
인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슬쩍 웃는것도 같았다. 아아, 오오토로는 수조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미츠루기도 수조 반대편에서 오오토로를 똑같이 따라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손과 손이 만났다. 오오토로가 행복하다는듯이 짧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날부로 오오토로의 모든 신경은 미츠루기 레이지에게 집중되었다. 오오토로는 거의 모든 시간을 수조 앞에서 보냈다. 그저 조용히 미츠루기를 구경하기도 하고 살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거나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다. 정말이지 행복한 나날이었다.
미츠루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오오토로를 조용히 응시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푹 숙였다. 감정이 파도가 치듯 요동쳤다. 자신을 이 좁은 수조에 가둔 것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저렇게 다정하게 웃어주며 세상에 중요한건 미츠루기 레이지밖에 없다는듯 이 작은 수조에 목을 매는 것을 보고 있자면 안도감과 행복이 울컥 쏟아져 나와 강제로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미츠루기는 어느새부턴가 오오토로를 볼때 본능적으로 환하게 웃는 자신을 발견했다. 약간의 수치스러움이 미츠루기를 감쌌지만 이게 오오토로가 읽어주는 책에서 나오는 사랑인가 싶어 이내 푸스스 웃어버렸다.
"나 미츠루기를 사랑하나봐요."
그 날은 둘이 만난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였다. 오오토로가 처음으로 미츠루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날이기도 했고 미츠루기가 오오토로를 위해 수조에 작은 하트를 그려준 날이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린 날이기도 했다.
"저 꼭 해보고 싶은게 있는데, 미츠루기랑 같이 욕조에 들어가보고 싶어요. 물 속이니까 숨도 쉴 수 있을거고... 제 욕조 커서 괜찮을텐데 어때요?"
미츠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번쯤 유리벽을 만지는것이 아닌 오오토로의 살결을 만져보고 싶었다. 오오토로가 미츠루기를 욕조로 안아 옮기려 미츠루기의 허리를 잡았다. 그 순간 타는 듯한 고통이 미츠루기의 등골을 서서히 타고 올라왔다. 미츠루기는 오오토로를 쳐내고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허리가 화상을 입은 듯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아.. 아.. 제 온도가 미츠루기한테는 너무 높았나봐요. 아프게해서 미안해요."
미츠루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눈물이라기엔 지나치게 뽀얗고 둥그렇게 모양새가 잡혀있었다. 오오토로의 놀란 눈이 더 커졌다. 미츠루기는 진주를 흘리고 있었다. 약간 붉은기가 도는 진주들은 알알이 굵게도 수조 바닥에 쌓여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또다른 보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미츠루기는 오오토로를 어디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제가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해요."
미츠루기는 입이 찢어질듯 환하게 웃는 오오토로를 보며 바닥에 쌓인 진주들을 집어들었다. 오오토로는 미츠루기의 눈물을 좋아하는 것일까. 눈물따위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미츠루기는 한 줌 가득 진주를 움켜쥐곤 오오토로의 손 위에 소담히 담아주었다. 아이같이 좋아하는 오오토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 날부터 미츠루기는 오오토로를 위해 울었다. 오오토로는 그 모습을 황홀한듯이 바라보았다. 억지로 윽윽 울고 있는 그 모습이 미치게 예뻤다. 그 은빛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진주를 후드득 떨어뜨리는 모습이 너무도 우아해보여서 그 모습 그대로 박제해버리고 싶었다.
미츠루기는 욕망이 투명하게 비쳐오는 오오토로의 눈을 보며 저 사람은 나 자체를 사랑하는걸까 내 눈물을 사랑하는 걸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오토로는 미츠루기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바닥에 남은 눈물들을 조금씩 모으다가 울적해지려던 그때 미츠루기의 꼬리를 흘긋 보던 오오토로가 말을 꺼냈다.
"전 세상에서 미츠루기가 제일 좋아요. 보고만 있어도 진짜 너무 행복해서 죽어버릴거같아요."
미츠루기는 살짝 웃었다. 오오토로는 역시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를 진심으로... 미츠루기는 오오토로가 언젠가 읽어주었던 동화를 떠올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었던 동화의 제목은 [인어공주] 였었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결말을 부드럽게 읽어주며 자신이 왕자고 미츠루기가 인어공주였더라면 절대 저런 결말이 나지 않았을거라며 웃던 오오토로의 모습이 사진으로 인화한듯 선명하게 기억났다. 미츠루기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오오토로는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생긴것인가 의심하며 눈을 비볐다. 수조에서 얌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미츠루기가 보이지 않았다. 숨이 가빠졌다. 마약을 처먹은것마냥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조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1분내로 설명해라. 미츠루기 레이지 어디갔어!"
"아니 그게 아니라..."
오오토로는 그게 아니라는 뜻이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츠루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을셈인가.
"뭐가 아니라는거야 지금 걔가 내 눈 앞에 없는데!"
"죄송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안에 내 눈 앞으로 데려와."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봄바람처럼 상쾌할 수가 없었다. 저절로 소금기를 머금은 것처럼 얼굴이 짜게 식었다. 오늘만 감독에게 타박을 열댓번은 들은 오오토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미츠루기 레이지 찾았습니다."
"어디있는데."
"그... 집에 계십니다."
오오토로는 촬영장을 뛰쳐나갔다. 그의 보석이 멀쩡히 돌아왔는지 확인해야했다. 오늘따라 신호등이 천천히 바뀌는 것만 같은 이상한 경험을 했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문을 열자 바로 앞에 미츠루기가 서 있었다. 정말로 돌아와있었다. 곧 미묘한 이질감이 오오토로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미츠루기. 왜.... 왜 서있어요?"
"....."
미츠루기는 입을 벌리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 했지만 오오토로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다. 답답해진 오오토로는 미츠루기의 어깨를 꽉 잡고 대답 좀 해보라며 거칠게 흔들었다. 왜 그렇게 아름답고 빛나던 꼬리가 사라지고 평범한 다리가 생겼는지, 왜 눈 밑에 사랑스럽게 박혀있던 푸른 보석이 사라졌는지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말 좀 해보라고요!"
미츠루기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눈물이 투명했다. 짭짜름한 투명의 액체, 평범한 눈물이였다. 미츠루기는 더 이상 진주를 흘리지 않았다.
오오토로는 얼빠진 얼굴이 되어 미츠루기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냥... 나가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미츠루기는 오오토로의 팔을 잡았다. 그 처연한 얼굴을 보았다면 한 번쯤 눈물을 닦아줄만도 했지만 오오토로는 미츠루기를 지나쳐 한 쪽으로 치워진 보석들 위에 드러누웠다. 오오토로는 우는것같이 보였다. 미츠루기는 그 모습을 보더니 밖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나를 보던 그 얼굴은 진심이었는데. 그래서 내가 오오토로를 위해 내 꼬리와 다리를 맞바꾼것인데. 미츠루기는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문질러 닦았다. 눈물이 굴러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손등에 스며드는것이 무서웠다.
미츠루기는 가까운 바다로 걸어갔다. 짠 향기가 익숙했다. 천천히 바다에 몸을 담궜다. 맨 다리에 바닷물이 닿는 느낌이 이질적임과 동시에 향수를 불러왔다. 미츠루기는 하염없이 바닷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갔다. 물거품으로 변할때까지 그렇게.